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어크로스
이 책에서 저자는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고찰한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이란 각자 알아서 살고 각자 알아서 죽어야 하는 것, 그리고 죽음은 얼핏 보기엔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평등한 세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현실에서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이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즉 존엄한 삶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명의, 신약, 의료 기술, 자기 계발 담론만큼이나 왜 사람이 일하다가 죽고, 가난해서 죽고, 학대로 죽고, 고립으로 죽고, 차별로 죽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사건 사고‘가 어떻게 나의 노화, 질병, 돌봄, 죽음과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전환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실 그간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 책의 내용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그것은 존엄한 삶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나에게 존엄한 삶은 어떤 것일까 고민해 보게 되었다. 삶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선택들을 불가피하게 하게 되고 모든 선택들이 다 만족스러울 순 없다. 돌아보았을 때 만족스러운 선택도 있겠지만 아쉽고 후회되는 선택들도 있다. 나의 존엄한 삶이란 나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 최대한 후회가 없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때로 나 자신이 나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해 괴로울 때도 있지만, 나의 마지막이 언제든 왔을 때 후회만은 하고 싶지 않다. 후회를 해야만 한다면 ’~을 해볼걸’이라는 후회보다는 ’~을 하지 말걸 ‘이라는 후회가 낫겠다 싶다. 안 하는 것보단 차라리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이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을 새긴 주사위를 던진다. 그 결과는 ‘우연히’ 누군가의 일상에 들이닥친다. 각자 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주사위를 던진다. ‘행운’을 기대하면서 던지는 주사위다. 최대한 천천히 늙기를, 덜 아프기를, 깔끔하게 죽기를 바라며. 또 착하고 경제력도 갖춘 가족이 나를 잘 돌보기를, 다정하고 친절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기를, 말 잘 통하고 헌신적인 간병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주사위를 던진다. 그런데 ‘만약’ 주사위 던지기의 결과가 나쁘거나, 더 이상 던질 주사위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사위 놀이는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는 우연, 운, 기회, 가능성을 뜻하고, 또 하나는 투기, 모험, 위험, 사행성을 의미한다.
웰다잉이 강조될수록 ‘잘 죽기’는 요원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웰다잉이 전제하는 ‘죽음’은 연명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명의료를 둘러싼 환자, 보호자, 의료진 간의 갈등 및 쟁점은 웰다잉이란 광의적 표현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한국의 기이한 의료체계, 빈약한 사회보장, 정의롭지 못한 돌봄의 배치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호스피스 확대, 왕진, 간병 급여화 같은 제도도 절실하다. 각 사안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한다. 또 건강한 몸을 정상으로 여기고 아프고 취약한 몸에 낙인을 찍는 인식을 갱신해야 한다. 돌봄을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활동이나 시혜성 사업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문제, 즉 정치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즉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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